의식을 이식하기

 

Single particle analysis라는 기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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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한 물질을 다양한 구도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으로 고해상도 구조를 추측하는 기술이다. 심지어는 입체구조까지 꽤나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αB-crystallin의 구조라고 한다)

2차원적인 표상을 쌓고 또 쌓아 한 차원 위의 정보를 캐내는 셈이다.


사람의 의식을 말할 때 마치 육신과 구별되는 개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의식과 육체는 흔히 소프트웨어-하드웨어적인 관계로 비유되곤 한다. 허나 실제 연구자들의 생각은 상이하다고 한다. 물질로 증명하고 물질로 주장하는 과학도로서, 본인 역시 육신과 의식의 구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식’을 뇌라 불리는 기관으로부터 비롯되는 일련의 정신, 신경활동이라 정의한다면 결국 정신 역시 물질(육체) 간 상호작용의 일환일게다. (물론 정의 자체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슬프게도(?) 의식과 정신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의식-육체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적 관계 또한 부정된다. ‘의식을 육체 밖 연산장치에 이식한다’는 공상과학적 상상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행동을 의식의 표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행동이 곧 의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특정 마음상태의 징후(that could indicate their state of mind”)라고 할 수는 있을게다. 그렇다면 행동을 적어도 ‘의식의 표상’, ‘그림자’라고는 칭할 수 있을거라 본다.

가능한 모든 선택의 순간 똑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다시 말해 매 순간 똑같이 행동하는 두 사람의 의식은 유사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대응되는 모든 각도에서 동일한 표상을 보이는 존재는 본질 또한 유사하지 않을까. 적어도 표상으로 본질을 ‘봐야’하는 관찰자는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가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과 유사하게 행동하도록 학습시킬 수 있음을 안다. 알다마다, 자동주행을 비롯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시간과 자원이 꽁으로 주어진다면) 모든 상황과 행동을 학습시킬수도 있을 듯 하다. 우리는 한 사람만을 타겟으로, 알려진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그 사람과 같이 행동하도록 학습된 소프트웨어를 그 사람과 다른 존재로 구별해낼 수 있을까?

말하자면 튜링 테스트의 또다른 버전이다. 튜링은 기계에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도록 할 정도의 대화능력이 있다면 기계에 지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거라 보았다. 비슷한 논리로 사람과 그 사람을 학습한 기계의 존재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컴퓨터에 의식을 이식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라는 하드웨어에 다운로드하는 대신, single particle analysis과 유사한 방법으로 단면적 표상을 차곡차곡 쌓아서 말이다.


물론 행동-의식의 관계는 그림자-물체의 관계처럼 단순하지 않다. 차라리 표현형-계통수의 관계와 닮은 듯 하다. 형태가 유사하다 하여 반드시 근연관계에 있지는 않다. 표상이 유사하다 하여 본질이 유사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및 여타 동물)에서 ‘의식’이라 불리는 것과 상응하는 무언가가 학습된 프로그램에도 존재한다 생각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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