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과학의 영역에 감정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지위는 어마어마하다. ‘~는 과학이 아니다’는 식의 사실판단이 몇몇 주장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사용되는 현상을 보고 있자면 과학도로서는 과학에 이토록 큰 권위를 부여하는 모습에 감개무량하기까지 하다. 과학이 이토록 큰 권위를 얻게된 것은 바로 과학이 객관적, 물질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객관적, 물질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기에 어떤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고 한 주장을 다른 물질적 사실을 통해 주관을 배제한 채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재현 가능하고 반박 가능한 이성중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은 과학과 다르다. 삶의 순간에서 사람을 움직이는건 감정이다. 감정만큼 강하고 확실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또 있을까? 냉정하고 논리적인 행동일지라도, 결국 삶의 매 순간에서 그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다. 결국 우리는 감정을 동기삼아 행동하는 존재이고, 이는 (가장 이성적인 행위라 불리는) 과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이라는 행위 자체는 이성적, 가치중립적이라 할지라도 과학을 하는 행위자, 즉 과학자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며 매 순간 가치판단을 내리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는 존재를 근거로 당위를 주장하는 직업1이며, 존재를 사회도덕적으로 올바른 당위와 잇는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학자 역시 사람이고 감정적인 존재라 할 지라도 과학의 영역에는 감정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과학자는 물질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영역에서 감정을 근거로 사용하거나 감정의 개입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과학자는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학문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주장을 받아들일 때 주장에 실린 감정보다 주장이 말하는 바 그 자체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학과 과학자에게 그토록 큰 지위가 주어진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 즉 이성 덕분이다. 주장에 사용된 용어 하나하나에 담긴 발화자의 감정은 중요치 않다. 과학도가 주목해야할 유일한 가치는 용어의 학문에서의 정의, (다소 밋밋한) 주장의 사실적 측면 뿐이다. 이는 주장을 받아들일 때 뿐만 아니라 주장을 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도는 상황에 적확하면서도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주장이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가능한 줄여야 한다.

우리는 견해 차이에서 감정 싸움으로 번져간 학계의 사례를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는가?2 이는 과학의 영역에서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감정으로 공격해와도 이성의 언어로 이해하고, 이성의 언어로 반박하고, 이성의 언어로 해석이 유일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고, 그것이 과학자로 불리고픈 사람이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 생각한다.


  1. 존재의 원천은 존재 뿐이고 당위의 원천은 당위 뿐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위가 당위로만 근거되는 순간 그 당위는 합의의 여지가 없어진다. 개개인마다 저마다 다른 당위를 가질테고 당위 간 충돌 또한 피할 수 없을게다. 합의점이 존재할 수 없는 당위는 충돌상황 해결을 회피한다. 충돌하는 당위의 근거 또한 개개인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는 당위이므로 토론은 불가능하다. 공통된 바탕을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당위는 의미가 없다. 객관적인 존재가 뒷받침하는 당위에서부터만 토론과 합의, 더 나아가 의미있는 당위가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당위의 바탕은 존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가장 대표적으로 ‘철학적인 문제는 존재하는가’를 두고 다투었던 이야기미적분학의 창시자는 누구인가를 두고 일어난 논쟁 등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비록 과학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정이 끼어들 자리는 아니었음이 자명하다.